게스트하우스는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 아니다. 그 공간에는 누군가의 여행과 누군가의 이야기가 동시에 머문다. 같은 방을 나누고, 같은 식탁을 쓰며, 예상하지 못했던 만남과 고요함을 함께 마주하게 된다. 이번 여행은 호텔도 에어비앤비도 아닌, 오직 ‘게스트하우스’만 고집한 여정이었다. 도시별로 도장 깨기 하듯 다양한 게스트하우스를 경험하며, 숙소 이상의 감정을 느끼게 된 순간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교토의 고택 게스트하우스는 ‘조용한 공존’이라는 감정을 알려주었다
교토 히가시야마 골목 깊숙한 곳, 작은 목조건물 하나에 들어서자 나무 바닥 특유의 삐걱임과 함께 은은한 유자 향이 느껴졌다. ‘사토노이에’라는 이름의 이 게스트하우스는 100년 된 고택을 개조한 숙소였다. 공용 거실에는 책장이 있었고, 손님들은 소곤소곤 이야기하거나 조용히 차를 마셨다. 나는 6인 도미토리 방 한쪽에 짐을 풀고, 낮에는 료안지 근처를 돌아보다가 해 질 무렵 숙소로 돌아왔다. 누군가는 일기를 쓰고 있었고, 어떤 이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굳이 말을 걸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고, 말을 건네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는 조용한 존재로 머무는 것도 하나의 소통이었다. 그날 밤, 주인장은 작은 화과자와 녹차를 건네며 “여기선 시간을 아끼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했다. 교토의 고택 게스트하우스는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느낌’을 처음으로 가르쳐준 공간이었다.
베를린의 아티스트 게스트하우스는 매일이 하나의 전시처럼 흘러갔다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오래된 공장을 개조한 ‘루프트하우스’는 이름부터 예술적 감성이 느껴졌다. 들어서자마자 벽마다 걸린 그림과, 복도에 놓인 설치 작품들, 그리고 창고를 리셉션으로 만든 구조까지— 모든 게 하나의 큐레이션처럼 꾸며져 있었다. 게스트 중 일부는 실제로 작업 중인 아티스트였고, 밤이 되면 공용 부엌에서 간단한 와인파티가 열리기도 했다. 나는 프랑스에서 온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슈퍼에서 산 치즈와 빵을 나눠 먹으며, 각자의 작업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는 노트북을 펴고 글을 쓰고 있었고, 어떤 이는 지하에서 잔잔한 음악을 틀고 작은 공연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뭔가를 만들고 있었고, 말없이도 서로를 존중하고 있었다. 베를린의 이 게스트하우스는 잠자는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을 실험하는 공간 같았다. 내가 만든 그림엽서 한 장을 공용 게시판에 붙이며, 나도 이 풍경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제주도의 오름 뷰 게스트하우스는 바람과 고독, 그리고 회복의 장소였다
성산 근처의 ‘바람자리’라는 이름의 게스트하우스는 정말 바람이 많은 곳에 있었다. 작은 오름 앞에 놓인 하얀 건물, 방은 단출했고 창문은 크고, 침대보는 햇빛에 바래 있었다. 공용 라운지에는 LP가 흐르고 있었고, 주인장은 손수 내린 드립커피를 나눠주며 오늘의 바람 세기를 이야기해줬다. 나는 그곳에서 3일을 머물렀고, 특별한 관광은 하지 않았다. 오전엔 바람 따라 산책을 하고, 오후엔 일기를 쓰고, 저녁엔 숙소 옥상에서 다른 여행자와 라면을 나눠 먹었다. 대부분의 게스트는 혼자였고, 그 혼자라는 사실에 위축되기보단 공통된 고요 속에 위안을 얻고 있었다. 여행자들은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밤이 되면 하나둘 커튼을 열고 별을 바라봤다. 제주의 이 게스트하우스는 삶의 바깥에서 잠시 멈춰 설 수 있는 ‘쉼의 안쪽’ 같은 장소였다. 돌아오는 날, 창문을 끝까지 열어 바람을 가득 들이마시며 나는 이곳의 공기를 기억하기로 했다.